2009/05/01 21:53

조금 늦은 듯 하지만.. 쑥쓰러운 유학 결정 및 근황.. Li + Fe

0. 원래 이 블로그에서는 출국하는 당일까지 공개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냥 오늘 짧게나마 근황과 함께 희대의 사건 하나를 풀어놓아야 겠다. 아마 이 글을 기준으로 이전에 작성된 포스팅들 중 상당수는 8월 초 경에 대부분 비공개로 돌려질 예정이니, 혹시라도 이 블로그에서 그간 관심있게 봐온 글이 있다거나(없겠지만) 까먹지 않고 나중에 써먹어야지 하는 글귀가 있다면(없겠지만) 감히 미리 퍼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CCL에 의해서 퍼간 포스팅에는 작성자(자라)를 명시해야 한다.

1. 최근까지 이전 포스팅(카페인 중독으로 비뇨기과에 갔다!?)에서 얘기했던 문제로 계속 병원을 다니고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젠 몸이 괜찮아져서 사실 지난 주중에도 한 번 갔어야 함에도 귀찮다는 핑계로 안 갔다. 다만, 이번 주 또는 다음 주에는 한 번 찾아가서 말 정말 없는 쿨가이 의사 선생님한테 괜찮아졌다고 얘기하고 진단서도 한 부(통?) 떼와야 한다. 글쎄 과연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불규칙한 생활 습관? 또는 편식? 뭐가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의 정말 적은 수의 말을 통해서 유추하자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2. 작년 11월에 같이 강의를 듣는 Y형이 강의 시간에 과 사무실 앞에 단 “한 장” 놓여있던 브로셔를 갖고와서 보여줬다. “Master’s Programme in Machine Learning and Data Mining” 소위 Macadamia라 불리는 2007년에 처음 시작한 유럽 모 대학의 석사 과정 학생을 모집한다는 브로셔였다.

작년 봄학기에 학교에 3년 반만에 복학한 내 성적은 2.3X였다. 선동열 학점이라 불리던 0.8X 학점도 받아봤고, 학사 경고는 2회, 그리고 A+을 제외한 A0부터 A-, B+, B0, B-, C+, C0, C-, D+, D0, D-, F까지 모든 가능한 성적을 모두 받았던 내 성적표는 정말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다만 다행스러웠던 점은 학교를 3년을 다녔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졸업 이수 요건 130학점의 절반인 65학점 밖에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복학하고 정말 미친 듯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에도 학교에 남으면서까지 총 2학기 + 1 계절학기를 동안 50학점을 이수했다. 그리고 예전에 교환학생 가서 들은 강의 중 F를 받지 않은 강의 두 개를 추가해서 총 54학점을 이수했다. 54학점을 이수하는 동안의 성적은 대략 3.6X 정도로, 이전의 2.3X와 더하고 빼고 하니 3.0X가 됐다. 정말 이렇게 생활하면서 가장 야속했던 사람들은 "학교 다니는게 회사 다니는 것만 하겠냐?"라던지 "그래도 공부가 제일 쉽다"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해대던 자들이다. 나도 회사 생활 3년 꼬박해봤고, 학교 생활도 꼬박 4년 했으니 감히 말해주겠는데, "공부가 제일 어렵다." 

강의실에서 Y형이 건네준 브로셔를 펼쳐보는 순간, 극적으로 말해 "새로운 빛"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부는 조금 더 해보고 싶지만, 이 지긋지긋한 학교와 평생을 갇혀서 보낸 대한민국을 벗어나고 싶던 나,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정말 이보다 더 어두울 수 없는 터널 안에서 헤매고 있던 나한테, 저 끝에 드디어 빛을 보여주는 브로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미국) 유학은 정말 학점이 극히 높고, GRE 성적이 상당히 높고, 그런 애들만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가는 아해들을 보면 다들 학점은 4.0/4.3이오, GRE 성적은 (난 잘 모르지만) 꽤 높았다. 그런데, 그 브로셔를 보고 생각해보니 세상이 대한민국하고 미국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3. 그때부터 나는 틈나는대로 인터넷을 통해서 유럽 대학들을 찾아보고 시작했다. 사실 미친듯이 찾았어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도 없고(한 학기에 24학점 + 알파로 들으니 시간이 있을리가...), 유럽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서 찾는데 한계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주위에는 유럽을 배낭여행으로 갔다온 사람말고는 유럽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정도로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할 말 다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국한되긴 했지만, 틈 나는대로 기를 쓰고 찾아봤다. 직접 인터넷에서 아는 나라 이름과 University라는 키워드로 찾아보고, 각 대학에서 English-only (석사) 과정을 제공하는지 확인하고, 해당 대학이 괜찮은 곳인지 각종 순위 및 신문 등에서 찾아봤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스페인, 등등... 

작년 두 번째 학기 종강이 12월 27일이었고, 내가 꼭 지원하려고 했던 (하지만 딱히 이유는 없던) 대학 대부분의 Application Deadline이 1월 중순과 말에 걸쳐있어서 정말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4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나중에 한 군데 더 추가 지원했다. Deadline을 눈 앞에 두고,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누구한테 조언 한 번 못 듣고, 에세이를 미친듯이 Deadline 전날 밤 밤새서 작성하고 인터넷으로 교정하고 해 뜨는 것을 확인하면서, 등기로 받기로 한 서류들을 문서수발실에서 직접 우체부 아저씨한테 받아 페덱스 지점으로 30분 걸려 걸어갔다. 위치도 제대로 확인 못한 상태로 페덱스로 막 걸어가는데, 괜히 울쩍해지는 것이다. 에쎄이를 근 한 달 넘게 쓰면서 주위에 영어 잘 하고 글 잘 쓰고 이미 유학 간 사람들한테 교정 받고 내용 수정 받던 애들과 단 이틀만에 간신히 쓴 내가 비교되면서 우울해졌고, 빛나는 성적표와 빛나는 각종 시험 점수를 갖고 자신 있게 (소위 말하는) 세계 최고 대학에 지원하던 애들과 보잘 것 없는 (아니, 비참한) 성적표와 초라한 원서를 간신히 (대한민국에서는 듣보잡인) 대학에 지원하는 내가 비교되면서 더 우울해졌다.

4. 2월 달에 스위스 로잔 공대에서 불합격됐다는 통보를 "아버지께" 메일로 보냈다. 어느 일요일 점심, 아버지께서 단 둘이서 점심을 먹다 말고 로잔 공대에서 온 메일이 프린트된 종이를 내게 조심히 건네주시면서 "내가 뭘 좀 보여줄게 있는데,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 아, 그리고 그때 로잔 공대 지원했다고 했나? 거긴 어때? 좋은 대학인가?"라고 정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소심한 모습을 보게한 로잔 공대. 정말 끔찍했다. 불합격했으니 기분이 안 좋아야 되고, 좀 화도 나고 해야 하는데, 정말 태어나서 처음보는 소심한 아버지 앞에서 난 다만 "아, 떨어졌네. 괜찮아요. 아직 세 군데나 더 남았고, 나머지 세 군데나 로잔 공대나 다 괜찮은 대학들이에요"라면서 대범한 척을 하면서 꾸역 꾸역 볶음밥을 입에 쑤셔 넣을 수 밖에 없었다.

5. 4월 들어서,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와 핀란드 헬싱키 공대에서 합격 소식이 왔다. 로잔 공대에서 떨어진 후, 정말 하루에 메일을 100번 씩 확인하고, 각 대학 입시 홈페이지에 로긴을 100번 씩하면서 상태를 확인했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합격했다는 꿈, 아니면 불합격했다는 꿈을 꾸며 불안에 떨면서 지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3월~4월에 아팠던 것이 이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었던 것 같다. 4월의 두번째 주 어느 날, 델프트 공대의 입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긴을 하고, 정말 백만번을 봐도 변하지 않던 Status가 "You have been admitted to TU Delft's Master's programme"로 바뀌어 있는 것을 봤을 때, 그 느낌이란...

6. 스웨덴 KTH의 입시 사정 결과가 내일 나오기에 그간 한 두 주일 정도 마음 편히 쉬고 있는데, 갑자기 영국 UCL에서 메일이 왔다. 이 곳은 초기에 지원한 네 군데와는 별도로 4월 초에 학과 사무실 앞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지원했던 학교다. 그곳에서 내 원서를 담당하는 교수가 내 수학 실력이 궁금하다면서 수학 문제 15문제를 보내왔다. 그 문제를 풀고 결과를 스캔해서 보내라고 메일에는 써져있었다. 내가 UCL에서 지원한 프로그램이 MSc in Computational Statistics and Machine Learning인데, 아무래도 내 비참한 성적표를 봐선 많이 걱정스러웠나 보다. 15문제 중 대부분은 확률, 통계 관련 문제로 딱히 어렵진 않았고, 일부 미적분학 문제, 그리고 선형대수학 문제가 있었지만, 대부분 개념적인 것을 묻는 문제로 어렵진 않았기에, 후다닥 풀어서 보냈다. 사실 조금 자존심이 상해서 그 메일을 받은 당일 후다닥 다 풀어서 보내버렸다.

7. 마지막으로 근황. 사실 3~4월에 아픈 이후로 몸이 계속 비실비실대고 있다. 쉽게 피곤해지고, 잠을 자도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작년 1년 너무 무리했나 싶기도 하고, 졸업 학기라 마음이 해이해졌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정말 천만 다행으로 졸업하고 진학할 대학교들이 생겼기에 너무 무리하지 않고, 조금 쉬는 마음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성적이야 역시나 작년보다는 떨어지겠지만, 굳이 무리해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년 말에 사람이 학교 생활 무리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을 몇 번 겪었더니 몸을 사리게 된다.

아직 대학교 결정도 못 했고, 출국까지 3달이나 남았지만... Good-bye.

덧글

  • 진기 2009/05/14 17:21 # 삭제 답글

    크캬캬 멋지구나 멋져! 유럽으로 고고씽!!
  • 그지달심 2011/10/11 17:55 # 삭제 답글

    유럽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는 공학도로써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나무 2012/01/21 17:45 # 삭제 답글

    우연히 유학관련해서 인터넷 검색했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합격한곳에서 열심히 공부하시고

    원하시는바 이루시길 바래요.

    저도 열심히 할께요 :)
  • 마오즈 2015/10/31 12:15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유럽대학원 석사 준비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유럽대학원 관련하여 정보가 많이 부족한터라, 궁금한 점들을 좀 여쭤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byunggyu.casper@gmail.com
    or
    bk91rules@naver.com
    감사합니다!!
  • 쿨한정희 2015/12/19 18:08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마오즈 님과 같이 유럽대학원 석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저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도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이멜로 궁금한 것들 좀 물어봐도 될까요?
    sk830913@naver.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 쿨한정희 2015/12/19 18:08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마오즈 님과 같이 유럽대학원 석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저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도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이멜로 궁금한 것들 좀 물어봐도 될까요?
    sk830913@naver.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 쿨한정희 2015/12/19 18:0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마오즈 님과 같이 유럽대학원 석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저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도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이멜로 궁금한 것들 좀 물어봐도 될까요?
    sk830913@naver.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 라이크일론 2016/01/14 10:00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델프특 공대에 석사진학을 하고 싶은 4학년 대학생입니다!
    윗 분들과 마찬가지로 유럽대학원 석사진학에 관심이 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한국을 변화시킬 인재가 되고싶습니다. 저도 이메일로 작성자님께 궁금한 부분들을
    여쩌붜도 괜찮을까요?! 이메일 주소는 mnkang92@naver.com입니다!!
  • 라이크일론 2016/01/14 10:00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델프특 공대에 석사진학을 하고 싶은 4학년 대학생입니다!
    윗 분들과 마찬가지로 유럽대학원 석사진학에 관심이 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한국을 변화시킬 인재가 되고싶습니다. 저도 이메일로 작성자님께 궁금한 부분들을
    여쩌붜도 괜찮을까요?! 이메일 주소는 mnkang92@naver.com입니다!!
  • 2016/02/23 12: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23 12: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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