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1 21:48

왜 우울한지 알아버렸다.. -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Li + Fe

역시 책에 답이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 동네 한길서점에서 어슬렁거리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김용규 저)라는 책을 샀다. 그닥 철학적이지도 않고 철학에 관심도 없으며 철학의 ""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지만 뒤에 붙어 있는 "문학 읽기"라는 부분에 혹해서 사버렸다.

책의 구성은 그닥 복잡하지 않다. 책 겉표지에 써져 있듯이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가 전부다. 각 작품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전에 작가가 작가 나름대로의 철학적 화두를 던진 후, 해당 화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얘기를 술술 풀어나간다. 카페에서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마시듯이 작가는 부드럽게 하나 하나 이야기를 해주고 독자에게 한번씩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실존주의, 낭만주의,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등등 수 없이 많은 철학(?) 관련된 용어들과 인물들이 나온다. 모르면 어떻게 읽을 수 없는 것 아닐까라면서 혼자 패닉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독자가 철학 전공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배려하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나만 해도 전혀 모르는 인물들의 전혀 알 수 없는 이론들이 나와도 "아 이런 것이군"하면서 읽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1. 파우스트 - 괴테
  2. 데미안 - 헤세
  3. 어린 왕자 - 생텍쥐베리
  4. 오셀로 - 셰익스피어
  5. 변신 - 카프카
  6. 구토 - 사르트르
  7. 고도를 기다리며 - 베케트
  8. 페스트 - 까뮈
  9. 광장 - 최인훈
  10. 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11. 멋진 신세계 - 헉슬리
  12. 1984년 - 오웰
  1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프루스트

읽은 것도 있고 읽던 중에 포기한 것도 있다. 읽었던(또는 봤던) 작품에 대한 얘기를 보면 "아 이런 내용이었던가?"하며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고 아직 접하지 못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보면 해당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작품의 내용을 갖고 예전에 "철학 개론" 강의 시간에 들었던 인물들과 연관시켜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아직 2/3 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읽다보니 전에 접했던 작품에 대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상황과 책의 설명이 묘하게 겹쳐지면서 내가 접한 그 작품이 새로운 작품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곤한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어느날 구토를 시작하는 것이 지금의 나처럼 느껴진다.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서 심각할 정도로 동질감이 느껴진다. 난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뭔가 주위에 있는 것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나의 이 권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나처럼 그닥 철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니 문학 작품들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 정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 책에서 위에 언급한 작품들에 대한 줄거리를 찾을거라는 기대는 미리 접어두고 저 작품이 정말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생각하고 읽어야 진정 이 책의 핵심을 잡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점이 그닥 전문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웃음이 터질 정도로 웃기지도 않은 이 책의 미덕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독자 자신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대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립과 차이점이 존재하기에 책과 글이 좋은 것이고 그런 것 때문에 더더욱 읽어봐야 한다.



덧. 아 제목에서 언급한 정작 "왜 우울한가?"에 대한 답은 "존재론적 권태" 정도가 아닐까, 하는 거창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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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2007/11/25 00:34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무식한 사람이 철학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게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무식하냐면 이 책에서 다룬 작품은 읽어본 적도 없거니와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사람이름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나마 고등학교때 수업시간에 잠시 들어봤던 게 '어린왕자'정도다. 왜 난 이런 작품들을 읽지 않았을까? 아마도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럼, 난 이 책을 왜 읽었을까? 누군가 블로그에 소개했...... more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문학 길의 철학 네비게이션 2008/03/10 22:38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설득의 논리학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를 사려다가 '설득의 논리학'를 1+1로 사게 되었다. '설득의 논리학'이 철학과 논리의 만남이라면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는 문학과 철학의 만남이다. 설득의 논리학이 이성적인 측면에서 철학을 이야기 하다면 철학카페는 감성의 차원이다. 그래서 더 깊이가 깊다. 생각 많은 가을에 딱 어울리는 책이다. 김용규 아직 책읽기가 일천해서 이런 평가가 어떨...... more

덧글

  • 가하 2007/05/01 23:59 # 답글

    이런 책을 볼때마다 언급된 작품을 모두 읽지 못한 저의 지식양의 한계에 좌절하고 말아요.
    존재론적 권태라. 모르는 용어지만 두 단어만으로도 공감되네요.
  • 그저그런사람 2007/05/02 10:33 # 답글

    7번 13번을 못 읽었었군요. 저 모든 작품들에 대해서 제가 썼던 글이 있었는데 어디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최인훈의 광장은 키에슬로브시 감독의 영화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었지요. 제가 예전에 적은 글을 한번 읽어주시겠습니까?
  • 자라 2007/05/03 12:36 # 답글

    가하님/ 저 작품들을 꼭 다 읽을 필요는 없죠. 이런 책이 계기가 되어서 그간 못 접해본 작품을 접하는 방향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저도 다 못 접해봤기에 하는 궁색한 변명일 수도.. ㅡ_-)

    그저그런사람님/ 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정말 도통 쉽게 읽히지 않아서 한번 펴본 후 좌절 중입니다. ㅎㅎ 언제 한번 날잡아서 그저그런사람님 블로그에서 광장 관련 글을 찾아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_<
  • ssanighe 2007/05/14 18:35 # 삭제 답글

    머 이유를 그렇게 열심히 찾냐.
    쏠로면 우울한게 당연한거지.
  • 자라 2007/05/15 01:22 # 답글

  • 그저그런사람 2007/05/15 10:35 # 답글

    아니! 고수이신 자라님이...
  • 자라 2007/05/17 15:44 # 답글

    크흑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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